Günter Wand는 - 1996년 독일 뤼벡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페스티발(Schleswig-Holstein Musik Festivals)개막 연주뒤의 모습- 90세의 나이로 이세상을 떠났다.
거대한 지휘자 귄터 반트는 눈을 감았다. 아흔번째 생일을 맞이한 후 한달만에 독일의 마에스트로는 스위스에 있는 집에서 서거했다.
어떤 말들을 찾아야 할까..그의 죽음에 대해서..
지휘자인 귄터 반트는 지난 세기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졌다. 뒤늦게 성공을 거둔 모범적인 음악가인 동시에, 음악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은퇴하고서야 그는 세계적 케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는 지난 수십년동안 단지 적은 수의 객원지휘를 받아들였으며, 가능한 과도한 음반녹음을 행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휘자 그룹들의 경우엔 급속한 상업주의화되는 시점에서 그는 고지식한 인물로 남아있었다. 모든 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들에게 있어 그의 존재는 아주 껄끄러운 관계였다. 오케스트라들의 제한된 프로베(연습)계획들 내에서 그는 편안함과 고집으로 그 짧은 시간을 장악했다. "나에게 이 프로베(연습)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프로베들을 공동으로 필요로 한다.- 음악은 프로베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처럼 그는 연주가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바로 알게끔 이야기 했다.
동시에 귄터 반트는 겸손한 사람이다. 인정받는 지휘자로서의 자신 보다 음악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음악적 완벽성은 없다", 그는 늘 이렇게 강조했었다. 그러나 콘체르트 장소에서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 그 완벽성을 확인했다.
반트는 제자를 두지 않았다. 그는 늘 혼자였다. 그러함에도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많다. 그의 이름은 지난 여러해 동안 훨씬 더 작아져가는 레파토리와 관련되어져 있었다. 여러 많은 작품카탈로그에서 그에겐 몇 안되는 좋은 심포니들만 남아있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역시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브룩크너, 그는 그 음악을 "신이존재한다는 증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손안에서는 음악 또한 잘 연주되었다. 그의 음악 이전에 그는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늘 책임감있게 그리고 겸손하게 악보에 몰두했다, 그의 악보에 있는 의구심을 극복하기 위하여...
1982년 귄터 반트가 70이 되었을때 클라우스 텐슈테트의 후임자로써 NDR(북독일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임을 받으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겨우 5년 되에 그를 명예지휘자로 만들었다. 사랑, 이 단어를 음악가들은 진심이 아닌,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의"오케스트라는 힘들고 많은 프로베 기간 중에 하나씩 풀어가면서 그 사랑이라는 단어를 느껴갔다. 연주회장에서 관객들은 많은 위험한 순간들을 느꼈었다. 반트가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지휘대쪽으로 걸어나올때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번 그 지휘대에 서면 그의 몸은 단단해 졌다. 긴 팔의 근육들은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지휘대에서 그는 그렇게 음악 안에 있었다. 이처럼 반트로부터 브룩크너를 들은 사람은 그 들려진 음악이 평생 기준이 된다.
그의 함부르크 팬-단체는 지난 여러해 동안 금새 다 팔려나간 그의 콘체르트에서 걱정을 했었다. 이번이 마지막일수 있다는 조바심으로.. 작년 12월, 그의 90번째 생일 며칠전에 반트는 자신의 집에서 넘어져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빨리 회복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믿을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최근 며칠 전에 그의 건강상태는 아주 급속하게 악화되었고, 그의 삶의 의지는 그를 떠났다. 어제 귄터는 반트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2002. 2. 15/ 요하힘 미쉬케, 'Hamburger Abendblatt' 신문
옮긴 이: puuhh
ps.각계의 반응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인 미국출신의 지휘자 켄트 나가노, 북독일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 쾰른의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 BMG클래식(RCA) 관계자, 일본 아사이 신문 비평가("반트는 지휘대에서 신비스런 종교적 카리스마를 가졌다"-돈 오버!) 등도 모두 고인을 기리는 말들을 남겼다. 그중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인 블롬슈테트는 반트의 죽음은 음악계의 큰 손실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하며, "반트와 일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는 예술적 견지에선 타협이라는걸 인정하지 않았다." 라고 스웨덴 출신의 지휘자는 덧붙였다.
독일-프랑스의 TV방송인 Arte는 기존 프로그램을 변경하여 오는 일요일(2. 17) 19시 경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페스티발 2000' 오프닝콘체르트를 방영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반트는 안톤 브룩크너의 8번 심포니를 지휘했었다.
거대한 지휘자 귄터 반트는 눈을 감았다. 아흔번째 생일을 맞이한 후 한달만에 독일의 마에스트로는 스위스에 있는 집에서 서거했다.
어떤 말들을 찾아야 할까..그의 죽음에 대해서..
지휘자인 귄터 반트는 지난 세기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졌다. 뒤늦게 성공을 거둔 모범적인 음악가인 동시에, 음악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은퇴하고서야 그는 세계적 케리어를 쌓아 나갔다. 그는 지난 수십년동안 단지 적은 수의 객원지휘를 받아들였으며, 가능한 과도한 음반녹음을 행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휘자 그룹들의 경우엔 급속한 상업주의화되는 시점에서 그는 고지식한 인물로 남아있었다. 모든 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들에게 있어 그의 존재는 아주 껄끄러운 관계였다. 오케스트라들의 제한된 프로베(연습)계획들 내에서 그는 편안함과 고집으로 그 짧은 시간을 장악했다. "나에게 이 프로베(연습)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프로베들을 공동으로 필요로 한다.- 음악은 프로베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처럼 그는 연주가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바로 알게끔 이야기 했다.
동시에 귄터 반트는 겸손한 사람이다. 인정받는 지휘자로서의 자신 보다 음악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음악적 완벽성은 없다", 그는 늘 이렇게 강조했었다. 그러나 콘체르트 장소에서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 그 완벽성을 확인했다.
반트는 제자를 두지 않았다. 그는 늘 혼자였다. 그러함에도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많다. 그의 이름은 지난 여러해 동안 훨씬 더 작아져가는 레파토리와 관련되어져 있었다. 여러 많은 작품카탈로그에서 그에겐 몇 안되는 좋은 심포니들만 남아있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역시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브룩크너, 그는 그 음악을 "신이존재한다는 증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손안에서는 음악 또한 잘 연주되었다. 그의 음악 이전에 그는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는 늘 책임감있게 그리고 겸손하게 악보에 몰두했다, 그의 악보에 있는 의구심을 극복하기 위하여...
1982년 귄터 반트가 70이 되었을때 클라우스 텐슈테트의 후임자로써 NDR(북독일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임을 받으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겨우 5년 되에 그를 명예지휘자로 만들었다. 사랑, 이 단어를 음악가들은 진심이 아닌, 가볍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의"오케스트라는 힘들고 많은 프로베 기간 중에 하나씩 풀어가면서 그 사랑이라는 단어를 느껴갔다. 연주회장에서 관객들은 많은 위험한 순간들을 느꼈었다. 반트가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지휘대쪽으로 걸어나올때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번 그 지휘대에 서면 그의 몸은 단단해 졌다. 긴 팔의 근육들은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지휘대에서 그는 그렇게 음악 안에 있었다. 이처럼 반트로부터 브룩크너를 들은 사람은 그 들려진 음악이 평생 기준이 된다.
그의 함부르크 팬-단체는 지난 여러해 동안 금새 다 팔려나간 그의 콘체르트에서 걱정을 했었다. 이번이 마지막일수 있다는 조바심으로.. 작년 12월, 그의 90번째 생일 며칠전에 반트는 자신의 집에서 넘어져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빨리 회복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믿을 바는 아니지만. 그러나 최근 며칠 전에 그의 건강상태는 아주 급속하게 악화되었고, 그의 삶의 의지는 그를 떠났다. 어제 귄터는 반트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2002. 2. 15/ 요하힘 미쉬케, 'Hamburger Abendblatt' 신문
옮긴 이: puuhh
ps.각계의 반응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인 미국출신의 지휘자 켄트 나가노, 북독일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 쾰른의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 BMG클래식(RCA) 관계자, 일본 아사이 신문 비평가("반트는 지휘대에서 신비스런 종교적 카리스마를 가졌다"-돈 오버!) 등도 모두 고인을 기리는 말들을 남겼다. 그중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인 블롬슈테트는 반트의 죽음은 음악계의 큰 손실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하며, "반트와 일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는 예술적 견지에선 타협이라는걸 인정하지 않았다." 라고 스웨덴 출신의 지휘자는 덧붙였다.
독일-프랑스의 TV방송인 Arte는 기존 프로그램을 변경하여 오는 일요일(2. 17) 19시 경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페스티발 2000' 오프닝콘체르트를 방영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반트는 안톤 브룩크너의 8번 심포니를 지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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