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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çons de ténèb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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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영원과 초월의 예술 -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책과 생각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내부 - 이스탄불

 

 

움베르토 에코의 풍자적인 소설 '바우돌리노'의 첫 장면은 십자군에 의해 점령된 비잔티움에서이다. 골든 혼의 찬란한 새벽풍경과 거대한 지하수조, 장엄한 대성당 등 우리가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또 하나의 문명은 그에 의해 눈부시게 재현된다. 이제껏 자신들 보다 우월했던 문명들에 대한 질시로 그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이란 관점을 덮어씌워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질식시켜온 유럽의 오만함이 작가의 가르강튀아적 풍자에 의해 외려 미개한 야만인과 파괴적 약탈자로서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비잔틴 제국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동로마제국은 또 하나의 서구이자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인상적인 시 구절로 시작하는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는 스스로도 '그리스어를 쓰는 라틴인'으로 정체성을 인식했지만 서구역사에서 버림받은 자식이었던 비잔틴인들의 종교,사상,문화를 '빛의 모자이크'라는 화두를 통해 녹여내려 한 저자의 역작이다.

 

기독교가 경험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종교예술로 평가받는 비잔티움 예술은 서구의 종교미술과 다른 발전양태를 보인다. 그것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초월적 예술이었다. 그리고 단지 새로운 기법의 개발이 예술사를 분절하는 동인이 되는 것이 아닌 정치와 신학, 그리고 사상이 밀접하게 관련된 예술사였다. 따라서 저자의 서술은 주로 사상적 흐름에 집중하고 있기에 상당히 건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잔틴 예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콘은 신학적 논쟁과 그 맥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비잔틴 예술을 조망하고 싶은 이들에겐 더 없이 충실한 개론서이자 사전이다.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성립에서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미지 논쟁까지 단숨에 써 내려가는 저자의 박학은 힘있는 필치가 가미되어 사상의 벼리로써 예술이라는 그물을 무리없이 끌고 간다.

 

교회의 신학 논쟁과 관련된 비잔티움 예술 -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자칫 우상숭배로 여겨질 수 있는 초월적 절대자의 예술적 표현에 있어 당대의 사람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콘이 비잔틴 예술의 총화로 자리잡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초기 교회사의 숨막히는 이단논쟁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신의 아들이자 그 스스로가 신으로서 지상에 현현한 그리스도의 본성을 두고 발생한 이견들 - 인성을 강조한 네스토리우스파, 신성만을 강조한 단성론자들-을 물리치고 교회의 정통교리가 된 양성론, 즉 예수는 신인성을 가진 존재라는 교리는 절대자를 인간의 손에 의해 육화된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아울러 육화된 성령의 교리 즉, 성육신의 교리는 그리스도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성모인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 즉, 테오토코스(Theotokos)로 숭앙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규범적으로 마련된 이콘의 주요한 형식에 고정되도록 했다. 이처럼 공의회를 통해 공인된 교리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또한 인간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외양이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논거가 마련된다.

 

그리스도, 성모, 세례자 요한의 데이시스 이콘
 
 

하지만 인간에 의해 표현된 초월적 실체의 형상은 반드시 상징이어야만 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미지 자체가 원형을 대신할 수 없도록' 비잔틴 예술에서 표현된 형상들은 '물질적인 요소가 쉽게 연상될 수 없어야'했다. 따라서 비잔틴 이콘에서 나타나는 2차원적인 표현, 역원근법, 해부학적 관점에 어긋난 표현등은 원시적인 조야함이 아니라 사상에 의해 채택된 예술적 기법일 따름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비잔티움에서 모자이크 예술이 성행하였던 주요한 이유가 된다. 그들의 종교예술이 간직해야만 하는 '초월적 신비성'은 색유리나 금박의 찬란한 빛에 의해 구현되었다. 위대한 교부철학자들은 타불 산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성용'을 가능케 한 '빛'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빛'에 의해 인간은 신적 존재와 합일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 의해 모사된 초월적 존재의 형상이 자칫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3차원적인 묘사보다도 모자이크가 갖는 '정면성'은 '이데아'를 가리키는 데 더 적합했다. 그렇기에 2차원적 평면성이 갖는 원근감의 부재는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거리감을 해소하여 천상적 이미지들과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우주의 구현이라는 명제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콘의 규범성

 

사제에 의해 축성된 이콘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일반 신도들의 이콘숭배로 인해 조금씩 변질되었다. 아울러 비잔틴 제국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위협은 정치와 영토에 국한된 것 뿐만 아니라 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미 트룰로에서 개최된 제7차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에 의해 이콘의 주요 규범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초월자의 형상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콘의 공경행위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단성론으로 기울어진 황제들은 이콘 파괴론자들의 입김과 더불어 파국을 만들어낸다. 이에 따라 제1,2차 이콘 파괴운동이 시작되어 비잔틴 예술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콘 파괴운동이 수그러든 이후 이콘에 대한 흠숭(adoration)이 아닌 공경(veneration)은 가능하다는 입장이 재차 확인됨으로써 그것은 어느 정도 가역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동시에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을 단절시킨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비가역적이이도 했다. 그리고 이콘에 대해 어느 정도 규준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교회에 의해 이콘은 이제 단순한 작가의 영감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화(perigraphotai ; 본문 455쪽 참조)된다. 이콘 규범집(Painter's Mannuel)이 마련되고 아무리 단순한 요소라고 해도 화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덧붙여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잔틴 이콘 예술을 몇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고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부가하는 이 책의 내용은 도상학적으로도 충실한 해설서가 된다. 그리스도의 이콘에 나타나는 독특한 손 모양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성 모자의 이콘이 호데게트리아나 엘레우사(또는 블라지미르의 성모)와 같은 특정한 유형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와 삼위일체의 교리가 이콘에서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충분한 도판과 함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과 사상을 넘나드는 지적 향연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영원과 초월의 예술

 

현실적 감각과 유리된 과거로부터 일관된 표현 양식은 흔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리고 항상 일정한 기준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낙후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마에스트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가 그러한 평가를 받았던 것 처럼 비잔티움의 예술도 서구사회로부터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절하되었다. 하지만 첼리비타케가 그 특유의 표현방식인 유장하고 호흡이 긴 선율미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찰나적 예술을 구현했던 것 처럼 비잔티움 예술도 독특한 표현방식을 통해 초월적 존재를 향한 관조를 통해 영원의 미학을 성취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저자의 인상깊은 통찰은 선이 굵은 두 주체에 대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이콘은)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미술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원한 (신적) 세계의 반영이므로 인간 세계의 가변적인 기법의 변화나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콘 규범집에 따라 화가들은 인물의 표정과 동작, 신체의 균형까지도 일정한 규준에 따라 표현했다. 인물의 신체는 코의 길이에 따라 코 끝과 양 미간 사이의 점을 중심으로 하여 점점 확대시킨 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러한 비례의 조화와 세심한 인물배치는 교회의 도그마(Dogma) 즉, 교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방법과 관련이 있었다. 비잔틴의 건축이 '돌의 신학'이라 불렸던 것 처럼 이콘은 '이미지로 된 도그마'라 불릴 만 한 것이다.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이러한 이콘의 특징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특이한 구도이다. 비잔틴 예술이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공간감의 부재에 있어서 그것은 기법상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교의를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다. 3차원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점투시의 기법은 시선의 주체가 관찰자이지만 산점투시에 가까운 이콘의 역원근법은 여기저기에 있는 누군가들의 시선이 중첩된 시점이다.

유한한 주체가 건물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할 수 없다. 그것은 공간적 제약임과 동시에 시간적 제약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어느 곳에나 편재하고 있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주체는 공간적인 제약을 초월한다. 그리고 시간적인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영원함을 가진다. 결국, 이콘이 채택한 역원근법은 그것에 나타나는 초월자의 형태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 것일 뿐(이것은 불교에서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란 표현과도 비슷한 개념이다.)이라는 신학적 입장에 충실히 부합하도록 교의를 이미지로 효과적으로 재현해 낸 것이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궁륭천장

 

정교회의 교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예술이 주로 이콘의 형식이었고 비잔티움 예술의 대종을 이루었기 때문에 저자의 서술은 주로 이콘의 발전과정과 그것에 나타난 도상학적 은유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한 시대의 예술에 대한 해설서라고 보기엔 아쉬울 정도이다. 오히려 저자가 서문에도 밝혀 놓았듯 비잔티움 세계의 사유방식과 문화 예술적 구성원리를 풀어내는 저서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책의 초반부에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언급한 부분은 이러한 '미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의 기본원리에 대해 훌륭한 통찰을 제시하고 그것을 사도 바울로의 전도여행과 중첩시키면서 초대 교회에 있어 온 대립을 분쟁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에서 저자의 박학과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비잔티움의 문화예술을 다루기 위한 필연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서술된 교회의 역사와 분화과정도 흥미롭게 지켜볼 만 하다. 서양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 온 독자라면 익숙하긴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교회와 관련된 사건 또는 인물들을 간결하지만 너무 간고하지는 않게 풀어 쓴 부분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생경하지만 플로티노스나 위(僞) 디오니시우스와 같은 비잔틴 교부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교회 예술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즉, 빛으로 둘러싸인 초월자로부터 유출된 빛이 흘러넘쳐 현상계가 생성되었다는 것과 관조를 통해 그 빛의 존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잔티움의 예술이 빛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결국 이 책의 제목처럼 비잔티움은 '빛의 모자이크'의 세계 그 자체이고 그 제목의 정당성을 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암호의 해답을 두꺼운 책장속에 숨겨 놓은 것 처럼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예술의 기저를 밝혀 낸 해답이자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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